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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서기실의 암호 - 태영호 증언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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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서기실의 암호 - 태영호 증언

기파랑(기파랑에크리)

태영호 지음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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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목차
무자비한 독재자인 게 틀림없는데, 떠들썩한 하루 동안의 환영 이벤트로 김정은의 이미지는 더 할 수 없이 미화되었다. 여론조사에서 77.5%가 김정은에게 신뢰가 간다고 답했다 한다. 과연 그럴까? 김정은은 누구이며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온 세계의 이목이 북한과 그 지도자 김정은에게 쏠리고 있는 지금,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밝히는 평양 심장부 이야기는 한국만이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에게 북한의 정확한 실상을 보여 줄 것이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 문제. 북한 핵폐기냐, 한반도 비핵화냐 라는 용어 중 이번 남북정상 합의문은 한반도 비핵화를 택했다. 이것은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으로 결국 주한 미군을 몰아내겠다는 전략에 다름 아니다.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태공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이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 김정일은 "조선반도 비핵화란 북한만이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오직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김정일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p.241~242)

- 1차 핵실험 직후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과 북한 외무 차관 강석주가 나눈 다음의 대화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가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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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핵실험에 가장 분노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1차 핵실험 사흘 후인 2006년 10월 12일, 중국 선양에서 외무성 1부상 강석주와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李肇星·리자오싱)이 비밀리에 만났다. 북한 외무성 회담기록문에 따르면 리조성은 강석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인민은 조선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대단히 존경하고 있다. 김일성 동지는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매우 전략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조선 동지들은 그의 사상과 유산을 어기고 있다. 김일성 동지께서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을 제시하신 것은 조선과 같이 작은 나라가 핵 경쟁에 말려들 경우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될 수 있음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소련과 같은 큰 나라도 미국과의 과도한 군비경쟁에 말려들었다가 결국 붕괴되었다. 조선은 이번에 핵실험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산을 넘었다. 이제라도 핵개발을 중지하고 경제건설에 전념하기 바란다. 핵개발을 중지한다면 중국은 조선에 대한 경제군사적 지원을 늘릴 것이다 핵으로는 조선의 체제를 지킬 수 없다. 경제부터 조속히 회생시켜야 한다.”
그러자 강석주는 이렇게 되받아쳤다.
“내가 지금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과 담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청나라 사절 이홍장과 회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련의 사례를 들었지만 중국 외교부장이 소련의 붕괴 원인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소련이 붕괴된 것은 미국과의 군비경쟁 때문이 아니다. 당이 인민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게을리 했고 당 자체가 부패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우리처럼 당을 강화하고 사상 사업을 중시했다면 아무리 많은 군비를 쏟아 부었다고 하더라도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또한 김일성 수령님의 탁월하고 위대한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을 언급했다.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반도는 결코 비핵화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 수령님의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중국이 조선과 미국의 관계를 중재해 주기 바란다.”
강석주가 사용한 이 논리는 이후 북한의 일관된 핵 논리이기도 하다. (p.24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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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3대의 핵 집착

-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고, 그 방식이 핵과 ICBM, 공포정치였다. 신격화는커녕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명분마저 부족한 김정은이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공포정치다. 이것으로 카리스마를 형성하고 신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면 체제는 물론 김정은 자체가 무너진다. 김정은이 그토록 핵과 ICBM에 집착하고 장성택 숙청으로 대표되는 공포정치를 휘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518)

- 핵은 체제 보장을 위해 90년대에 갑자기 개발된 것이 아니다. 6. 25 와중에 피란민의 핵 공포를 확인하고 이때부터 김일성은 핵개발을 시작했다. 50년대에 이미 원자폭탄 개발 핵 연구소를 설립했고, 70년대 중반 이후 조선반도 비핵지대화(핵무기 개발 전략)를 주장하며, 핵 불사용 정책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에 불과했다. (p.40~48)

태영호의 간절한 바램

- 2016년 12월 나는 한국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하면서 통일부 출입 기자단과 회견을 가졌다. 이때 나는 북한의 핵개발 완성 계획을 공개하고 이를 ‘핵 질주 계획’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17년에 감행한 북한의 핵실험과 ICBM 발사는 나로서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8년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조성의 시기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이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인 것은 이런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핵 문제만큼은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절감했으면 좋겠다. (p.404~405)

철도 건설 문제.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철도 건설도 포함되어 있다. 6.15 공동 성명 이후 두 번째다. 그러나 태공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은 그것이 공허한 선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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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은 6·15 공동선언 직후 러시아와도 협력의 제스처를 취했다. 2000년 7월 19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구소련을 포함해 러시아의 지도자로서는 사상 최초의 방북이었다. 김정일은 이듬해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러시아를 답방했다.
김정일과 푸틴은 평양과 모스크바에서 각각 「조러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한다는 부분이었다. 남북 경제협력에 이어 한반도 종단철도가 연결된다면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들어올 것이 확실했다. 김정일도 이 계획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러시아 답방 1년 만인 2002년 8월 러시아 극동 지역을 다시 방문해 조러 모스크바 선언의 이행 문제를 협상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떠먹여 줘도 못 먹는’ 북한 체제의 한계 때문에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러시아는 건설 의지가 확실했고, 한국은 언제라도 지원할 의사가 있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국 철도를 연결하는 수송로를 열고 컨테이너나 석탄과 같은 중량 화물을 수송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철도를 어느 정도 직선화하고 터널과 교량도 많이 건설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북한의 동해안 방어부대 대부분이 철도를 따라 배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한반도 종단철도가 건설되어 철도 현대화가 진행되면 대대적인 부대 이전이 불가피했다. 북한 군부는 6·25전쟁에서 전세가 역전된 원인을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라고 보고 수십 년에 걸쳐 동해안 철도를 따라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구축했다. 철도 현대화 사업이 벌어지면 해안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북한 군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스스로 생존을 유지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부대 이전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개성 공단 건설 때도 군부는 새로운 주둔지를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 군부는 당연히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과 부대 이전을 반대했다.
부대 이전만 해결해 주면 되는 문제였지만 북한은 그렇게 할 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김정일이 군부의 반대를 물리치지 못한 이유다. 동해안 철도 현대화 계획은 자연히 힘을 잃었다. 이후 북한은 러시아의 하산부터 함경북도 나진항까지의 철도만 현대화하기로 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국과 러시아는 아직도 한반도 종단철도 수송로 창설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구글 어스를 통해 확인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북한의 동해안 철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비행장이 수없이 많다. 지금도 북한은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이 가능한 것처럼 한국과 러시아에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물론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이나 러시아가 북한 동해안에 무수히 산재한 부대 이전 비용까지 부담한다면 말이다. (p.14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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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남측 대통령 특사는 ‘배려, 리더십, 여유, 숙성된 고민, 솔직하고 대담’ 등으로 평가했고, 4월 정상회담 뒤 언론과 온라인에서는 ‘뚱뚱하고 귀엽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이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소탈하게 잘 웃는다’는 찬양 일색의 인물평이 나왔다. 고모부를 대공 기관총으로 처형했다는 뉴스는 까맣게 잊고 있다.
그럼 김정은의 진짜 모습은?

- 김정은은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
7월 27일은 휴전협정일이지만 북한에서는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다. 2013년 7월 재개관을 앞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전쟁기념관)에 화재가 발생했다.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부리나케 달려와 아직도 물바다인 지하에 구둣발로 들어갔다. 수백 명이 진화와 정리 작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김정은은 “내가 그렇게 불조심하라고 했는데 주의 안 하고 무엇을 했느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쌍욕을 했다. (p.518)

- 2015년 5월 김정은은 자라양식공장을 ‘현지지도’했다. 공장 현황이 말이 아니었다. 새끼 자라가 거의 죽었다. 공장 지배인은 전기와 사료 부족을 이유로 들었으나 김정은은 “전기, 사료, 설비 문제 때문에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넋두리”라고 심하게 질책했다. 김정은을 수행하던 고위 간부들도 고개를 떨군 채 그의 지시를 받아쓰기에만 급급했다. 돌아오는 차에 오르면서 김정은은 지배인 처형을 지시했고 그 즉시 총살이 이뤄졌다. (p.519)

- 트럼프의 발언 직후인 5월 18일, 북한을 방문 중이던 영국 APTN 통신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양형섭 부위원장과 인터뷰를 했다. 트럼프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APTN 특파원의 질문에 양형섭은 “우리는 대화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대화는 전쟁 때도 한다. 대화 못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외무성이 사전에 작성해 준 원고대로 ‘우리는 언제나 대화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었다.
APTN은 당일 평양발 보도로 북한이 트럼프의 대화제기를 환영했다고 보도했다. 집무실에서 세계 주요 언론 채널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김정은이 이 뉴스를 접했다. 그는 야밤에 외무성 김계관 1부상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질책했다.
“야, 그 늙은이(양형섭)가 어떻게 내 승인도 없이 트럼프와 대화에 임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를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누가 줬는가. 나는 조선의 지도자이고 트럼프는 대통령도 안 된 후보인데 같은 급이 아니다. 외무성이 그 늙은이한테 그리 말하라고 써줬는가.”
양형섭은 1925년 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일성의 사촌 매부다. 그런 인물을 김정은은 ‘늙은이’라고 칭했다. (p.519~520)

우리가 몰랐던 평양 비하인드

- 태공사의 증언에는 대다수 북한전문가들도 알지 못했던 무수한 고급 정보들이 등장한다.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이유
―김정은은 아이 때부터 고모부에게 뿌리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는 정철·정은 형제 중의 하나가 후계자가 되지 않으면 결국 온 가족이 숙청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일성 생전에 자신의 아이들을 인사시키고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이것을 누가 막았겠는가. 김경희와 장성택이었다. 김정일 생전에 김경희와 장성택이 고영희의 존재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p.326~327)
- 고영희의 남겨진 사진에는 김일성과 같이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김정은 또한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손자 신세가 된 것에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만 있었다면 스스로 ‘백두혈통’이라고 백 번 외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아마도 아이 때부터 장성택을 미워했으며, 장성택 부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p.327)
- (김정은은) 모든 재력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쏟아야 하는데 북한의 경제적 이권 대부분은 장성택이 쥐고 있었다. 장성택은 이권을 넘기느냐, 계속 쥐고 있느냐 선택해야 했다. 김정은이 가차 없이 처형한 이유 중의 하나는 장성택이 경제적 이권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p.312)

‘3층 서기실’
- 우리는 수많은 대북전문가와 북한 관련 서적이 있었음에도 ‘3층 서기실’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지난 3월 5일 북한에 파견된 한국 대통령 특별사절단이 김정은 집무실과 ‘3층 서기실’이 있는 노동당 3층 청사에서 김정은과 만남으로써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3층 서기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북한 언론도 처음으로 이 청사를 ‘조선노동당 본관’이라고 소개했다. '3층 서기실'은 북한 주민들도 잘 모르는 조직으로, 북한이 공개적으로 이 조직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3층 서기실은 기본적으로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주민들이 김씨 부자의 실체를 알게 되면 3층 서기실은 와해된다. (p.312)

- 3층 규모 당중앙 청사로,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와 같다. 그리고 ‘3층 서기실’은 대통령 비서실에 가깝다. 이곳은 중앙당 일꾼들도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는 완전한 금지구역으로 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다. (p.233)

개성공단
- 김정은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우리는 개성공단이 북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을 공급하는 공급처이며,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_ “개성공단이 조선 체제에 장기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하지만 얻은 게 더 많다. 우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을 벌었다. 둘째, 개성 시민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제와 관리가 용이해졌다. 다른 지역은 장마당 때문에 주민 통제가 얼마나 힘들어졌나. 개성 시민 5만 명이 매일 한 곳에 모여 일하고 퇴근하는데 따로 무슨 관리가 필요한가. 총체적으로 우리가 훨씬 이익이다. 이런 경제특구를 내륙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곳을 14개 더 만들라.” (p.299)

김일성은 사망하기 전 1990년대에 이미 식물 수령이었다
_ 1991년 교황의 방북 문제를 다루던 외무성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교황의 조선 방문은 이미 김정일 지도자 동지께서 안 된다고 결론을 내신 문제다. 김일성 수령님께서 해보라 하시니 어쩔 수 없이 자리만 지키는 것이다." 모든 권한이 김정일에게 넘어간 이후였기 때문에 김일성이 지시한 교황 방문이 이뤄질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p.21~22)
모든 것을 김정일에게 먼저 보고해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말, 즉 "이번 사업에 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지도자 동지(김정일)의 관심이 얼마나 큰 지 잘 알 것이다. ... 지도자 동지보다 수령님에게 먼저 보고가 올라가면 큰일 난다. 외무성이 모든 사안을 지도자 동지에게 우선 보고하고 그 후 지도자 동지가 수령님에게 보고하는 것이 당 내부의 보고 질서다." 라는 당 간부의 말도 김일성의 허수아비론을 밑받침한다. (p.32~33)

김정일은 김대중을 "어리석다"고 평가했다
- "페르손(요란 페르손 Goran Persson 스웨덴 총리)이 오늘 나(김정일)에게 서울 답방문제를 꺼낸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인 듯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직도 내가 서울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참 어리석다." (p.181)

이스라엘과의 미사일 극비 협상
- "우리 미사일 기술에 관심이 많은 나라가 있다. 우리가 미사일 기술을 중동에 수출하게 되면 새로운 미사일 경쟁이 일어날 것이고, 이스라엘의 안전도 위협당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10억 달러를 주면 미사일 기술을 수출하지 않겠다." (p.132~133)

북한이 화폐개혁에서 얻은 교훈
- 주민 집단 저항으로 시행 한 달 만에 실패했다. 당 경제정책비서 박남기가 처형되었다. 생존권을 건드리면 정권이 흔들린다는 교훈을 얻었다. (p.283)

- 여하튼 정책이 실패하면 담당 관료가 처형당하는, 어처구니없고 무서운 체제이다.

평양 공연을 거부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 김정일로부터 에릭 클랩튼 평양 공연을 추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에릭 클랩튼에 대한 김정일의 집착은 매우 집요했다. 한참 만에 돌아온 답변은 '북한의 인권상황 때문에 당장은 평양에 갈 수 없으나 앞으로 사태를 좀 관망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은 평양에 오겠다는 확답을 끝내 주지 않았다. (p.253~255)

- 김정은에게 90도 인사를 한 조용필과 비교된다.

북한의 봉수교회와 신자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 한국의 종교인들이 북한을 방문하면 당연히 북한의 종교계 인사가 그들 종교 시설에 안내하여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선전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그런데 가짜 교회에서 가짜 신자가 반복해서 예배를 보다 보니 그들 가운데 진짜 신앙심이 생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p.527~530)


평양심장부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핵심인물들

김정남이 김일성 눈 밖에 난 이유
- 스웨덴 총리가 평양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일 2001년 5월 1일 김정남이 위조여권을 들고 일본에 입국하려다 발각됐다. 서방 국가 수장 가운데 북한을 방문한 인물은 페르손이 최초였다. 김정남의 밀입국으로 잔치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이 사건으로 김정남이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278)

김영철은 이런 사람
-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2014년 8월 영국 채널4가 북핵 문제를 다룬 드라마 '오퍼짓 넘버'(Opposite Number)를 제작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영철 국방위원회 정책총국장은 평양 주재 영국대사를 소환했다. 영국 정부가 반북 드라마 제작을 중지하지 않으면 영국 내에서 상상할 수 없는 보복행위가 일어날 것이고 그 책임은 영국 총리가 져야 할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전달했다. 말하자면 채널4 청사를 폭파하겠다는 것이다. (p.362)

- 지난 4월 2일 평양 공연장에서 현장 취재를 하지 못한 남측 기자단이 항의하자 기자단에게 “내가 남측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입니다”라고 눙치며 나왔던 인물이 바로 김영철이다.

평양심장부를 이해하는 핵심키워드

벼랑 끝 외교
- 북한 외교가 강한 이유는 '벼랑 끝 외교'란 표현이 상징하듯이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외교이기 때문에 절박하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외교와 안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p.69)
- 김정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미국을 어떻게 저리 잘 다룰 수 있을까. 9. 19 공동성명이 나오는 과정까지 배짱은 배짱대로 튕기면서 챙길 것은 다 챙겼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더욱 강경해질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p.236)

- 북한에 우호적인 남측 인사들은 언제나 북한이 생존의 절박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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